결혼 전 나는 '삼방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의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삼방인터내셔널은 비록 큰 규모의 회사는 아니었지만 외국과 관련된 업무가 많은 알찬 회사였다.
회사에는 외국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다. 당시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외국인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나는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세상이 넓다는 것을 직접 느낄수 있었고, 나의 생각이 얼마나 좁은지를 깨답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되면 내 아이를 반드시 세계 곳곳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결혼을 한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원상이를 임신했을때, 나는 남편과 함께 밤마다 산책을 즐겼다.
"우리 아기는 내가 꼭 훌륭하게 키우겠어요. 딸이든 아들이든 넓은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엘리트로 키우고 싶어요."
"엘리트?"
남편은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이상했던 모양인지 엘리트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남편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했다.

사전적 의미에서 엘리트는 우수한 사람으로 인정되거나 사회적으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뜻한다. 사람들은 아마도 엘리트라는 단어가 풍기는 배타성, 즉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느낌 때문에 엘리트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엘리트는 선택받은 소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그것이 회사에 다닐 때부터 줄곧 내가 생각하고 있는 엘리트이 이미지였다. 내가 생각하는 엘리트의 의미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글로벌리스트쯤 될 것이다.

 

1982년 6월 7일,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와 남편에게는 결혼한지 1년만에 한 번의 유산을 겪은 후 얻은 귀중한 아이였고, 시부모님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한 아들 손주였다. 나는 자상한 남편을 둔 아내로서, 그리고 아들을 낳은 며느리로서 행복한 일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산 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산후통과 불면증이었다.
지금은 주부우울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부들이 출산 후 겪는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높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런 것은 주부 개인의 문제에 불과했다. 하루종일 아파서 누워있었다던가 불면증에 시달렸다던가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내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건강은 아기를 낳은지 1년 6개월 만에 심각한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매우 나빠졌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지칠대로 지친 나는 낮에도 거의 누워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 었다. 갑자기 내 눈 주위로 고사리 같은 손이 다가오더니, 그 작은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내 감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엄마, 눈 떠, 응? 눈 떠!"
늘 누워있는 엄마 곁에서 원상이는 젖을 떼고, 자리에 앉고, 서서 걸으며,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태어나서 세살이 되기까지 혼자 자란 내 아기,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원상이가 나에게 눈을 뜨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키우려고 했던 건 아닌데, 미안하다. 원상아.'
원상이의 한마디 말이 나에게 알 수 없는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원상이의 말에 마치 주문이라도 걸린듯, 눈을 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건강해지기 위해 스스로 민간요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방치하다시피 했던 집안 살림도 돌보았다. 피아노도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인 내가 기운을 차리니 원상이 또한 몰라보게 활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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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상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무척 늦된 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심한 야뇨증 때문에 이불을 종종 적시기도 했다. 놀기 좋아하고 공부에도 별 흥미를 느끼미 못 하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잘해서 1등을 하는 것 보다 자신만의 꿈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부보다는 확실한 주관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었고,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할 수 있는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공부를 못 하고 다른 아이보다 좀 늦되다고 해서 자칫 주눅 들지 않을까 걱정되어 아이에게 끊임없이 칭찬과 격려를 해 주었다. 즉 '말의 축복'을 통해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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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꼴찌에서 맴돌던 원상이가 영국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 영국 3대 명문 고교인 럭비스쿨에 입학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 UCL을 졸업하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세계 10대 투자은행인 UBS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칭찬과 격려가 담긴 '말의 축복'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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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엄마와 늦된 아이 원상이가 '꿈'을 이뤄내고 '행운'을 불러온 실제 이야기가, 이 땅의 수많은 평범한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신선한 희망으로 자리잡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