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좋은 아이로 키우는 비결
 의사가 된 "어떤 문제아"
 박동주  2019-08-01 AM 8:30  359



"뉴욕의 어떤 택시 기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말썽만 부리고 공부도 하지 않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택시에 중후한 신사가 탑승을 하게 되었다.
거리는 많은 차들로 밀렸고 기사는 흘끔 신사를 보았다.
성공한 분 같아 아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아들은 지금 고등학생이지만 이번 방학 때 일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는데 혹시 자리가 있으면 알려 주실 수 있는지요?"
"예, 저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이니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번
알아보아 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정말 연락이 와서 말썽만 부리는 아들은 병원에서 흰 가운을 입고
서류정리도 하고 허드렛일도 하게 되었다.
때로는 의사선생님을 따라 뒤에서 회진 하는 일을 도왔다.

환자들은 자신에게 마치 의사 선생님인 것같이 존경의 눈을 보내며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며 으쓱해지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아들은 정말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의대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그 병원에서 정말 의사선생님으로 재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취업을 시켜 준 그 의사 선생님은 좋은 가르침으로 제자를
잘 이끌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결혼 후, 한번의 유산을 겪고, 첫 아이를 낳은지 일주일 되었을 때부터 더욱 심해진 시댁과의
갈등으로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는 일이 생겼다. 그때부터 아무런 희망도 없이 거의 하루종일 누워서만 지내고 있었다.

아이는 늘 누워만 있는 엄마 곁에서 젖을 떼고, 자리에 앉고, 서서 걸으며,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내게 다가온 아이는 조그만 두 손가락으로 내 감은 눈까플을 들어 올리며“엄마, 눈 떠, 응? 눈떠!” 라고 말을 해도 나는 일어나지 못했고, 어느 날, 더 많이 아픈 날, 살고 있던 집 근처에 병원이 있기에 그저 영양주사나 맞으려고 찾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몸무게가 38키로 정도로 야위었는데, 두눈 주위는 벌겋게 다 짓물러 있었고, 날마다 하혈을 해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병원은 내과가 아닌 신경정신과였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나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어디가 아픈지 많이 아파요. 영양주사를 하나 놓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젊은 새댁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말을 해 줄래요?”

의사 선생님의 뜻밖의 말에 잠시 당황을 했지만 나는 그 동안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많은 일들을 눈물을 흘리며 다 쏟아 놓게 되었다.


내 말을 다 듣은 의사 선생님은 본인 이야기부터 해 주었다.
“의학 공부를 하면서 신경정신과는 더 많은 공부를 해야만해요. 나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아내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는데 정작 내 아내가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모든 병은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새댁은 지금 영양주사가 필요한게 아닙니다. 오늘 병원비도 안 받고, 영양주사도 안 놓아 줄테니 그 돈으로 가까운 언양불고기 집에 가서 실컨 드세요.” 그리고 마지막 말 한마디....,

“아기가 커갈수록 새댁의 힘은 커집니다. 시어머님은 점점 연세가 들어가고 힘은 더 약해지실 거예요.”
그 말이 누워만 있던 나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게 되었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청소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될 수있는대로 유기농으로
정성껏 식사를 준비했고, 실명의 위기까지 간 눈에는 렌즈를 끼었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꾸었고, 아주 작은 일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정도 건강을 회복하기까지는 약 8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위의 택시기사의 문제아 아들은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의사의 꿈을 꾸었고,
나는 우연히 찾아간 병원의 의사 선생님으로 인해 희망이 생겼고, 다시 꿈을 향해 노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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